솔직히 저는 KT 위즈가 이렇게 빨리 정상에 오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두산 팬으로서 창단 초창기부터 경기를 지켜봤는데, "당분간은 하위권이겠지"라는 생각이 훨씬 강했습니다.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2021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창단 8년, 신생 구단의 성장 역사
KT 위즈는 2013년 KBO 리그의 10번째 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 수원을 연고지로 삼아 2015년부터 1군 무대에 합류했고, 초기 몇 년은 예상대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도 경기를 보면서 "신생팀 특유의 얇은 뎁스(depth)가 문제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기서 뎁스란 주전 선수가 빠졌을 때 이를 메울 수 있는 선수층의 두께를 의미합니다. 베테랑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하면 전력이 급격히 무너지는 팀의 전형적인 패턴이었습니다.
KBO 리그에서 신생 구단이 안착하기까지 평균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KT의 행보는 분명 남달랐습니다. 2020년 정규시즌 2위로 처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이듬해인 2021년에는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통합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통합 우승이란 정규시즌 1위 팀이 포스트시즌까지 제패하는 것으로, 한 시즌 전체를 지배했다는 의미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우승으로 평가받습니다.
KBO 역사상 신생 구단이 이 정도 속도로 정상에 오른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출처: KBO 공식 홈페이지). 창단부터 첫 우승까지의 기간을 따져보면 KT의 8년은 유독 짧은 편에 속합니다.
2021 한국시리즈, 두산 팬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21년 한국시리즈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두산 팬으로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시리즈였지만, KT가 보여준 경기력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었고, 경험 면에서 분명히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KT는 4전 전승으로 시리즈를 끝냈고, 경기 내내 흔들리는 모습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KT의 불펜 운용 방식이었습니다. 불펜(bullpen)이란 선발 투수가 내려간 이후 경기를 이어받는 중간 계투와 마무리 투수 그룹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KT의 불펜진은 리드를 지키는 상황에서 거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게 4전 전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수들의 태도였습니다.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팀인데도 큰 무대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준비한 팀처럼 움직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팀이 단순히 운으로 올라온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KT 위즈의 2021 한국시리즈 주요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규시즌 1위 달성
- 한국시리즈 4전 전승 우승
- 두산 베어스 상대 통합 우승 완성
- 창단 8년 만의 첫 우승이자 KBO 역사적 신생팀 최단기 우승 사례 중 하나
우승 하나로 명문 구단이 될 수 있는가
KT 위즈의 우승은 분명 역사적인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승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진정한 명문 구단의 기준이 우승 횟수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KBO에서 삼성 왕조나 두산 왕조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우승 숫자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이 보여주듯, 오랜 기간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는 일관성 때문에 명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KT 역시 우승 이후에도 꾸준히 포스트시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왕조(dynasty)"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왕조란 특정 구단이 장기간에 걸쳐 리그를 지배하는 구조를 뜻하는 표현으로, 단발성 우승과는 결이 다릅니다.
팬덤 규모 역시 솔직히 짚어봐야 할 부분입니다. KT는 성적에 비해 전국 단위 팬덤이 아직 크지 않은 편입니다. KIA, 삼성, LG, 두산 같은 전통 구단들은 수십 년에 걸친 팬 문화와 지역 정서가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수원을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팬들이 있다는 건 분명한 강점이지만, 그 저변을 전국으로 넓혀가는 과정은 성적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KT 위즈가 진짜 명문 구단이 되려면
KT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은 저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KBO 팬 커뮤니티에서도 "KT가 한 번의 우승에 그칠 팀인지, 꾸준히 강팀으로 남을 팀인지가 진짜 평가 기준"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제 경험상 강팀은 주로 자체 육성 시스템이 탄탄한 팀에서 나왔습니다. 자체 육성이란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드래프트와 팜 시스템을 통해 선수를 직접 키워내는 구단 운영 방식을 의미합니다. FA 시장에서 돈으로 전력을 단기간에 보강하는 방식은 단기 성과에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인 구단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KBO 리그 전반적으로 자체 육성 성공 사례가 어떻게 팀 지속성과 연결되는지는 KBO와 한국야구소프트볼연맹(KBSA)의 운영 사례 분석에서도 꾸준히 언급되는 주제입니다(출처: 한국야구소프트볼연맹). 단기 영입보다 장기 육성이 구단 지속성에 유리하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KT가 앞으로 진짜 명문 구단으로 평가받으려면 우승 트로피보다 선수 육성 철학과 팀 전통을 쌓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의 KT는 성공한 신생팀임에는 틀림없지만, 명문 구단이라는 수식어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강팀으로 남아 있을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우승은 KT 위즈가 KBO 리그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KT가 어떤 팀 색깔을 만들어가고, 어떤 방식으로 팬 문화를 키워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이 팀의 진짜 역사를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산 팬 입장에서도 KT가 리그의 진정한 경쟁자로 자리 잡는다면, 그게 KBO 전체에도 좋은 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