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홈런더비는 1993년 양준혁의 초대 우승으로 시작해 올해로 30년이 넘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한때는 올스타전 중간에 끼워 넣은 이벤트 정도로 봤는데, 꾸준히 챙겨보다 보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고의 장타자들이 팀 승리 같은 부담 없이 순수하게 파워만으로 맞붙는 자리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30년 넘게 이어온 역사, 그리고 룰의 변천
일반적으로 KBO 홈런더비는 그냥 오래된 이벤트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역대 우승 기록을 하나씩 훑어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장타자(長打者)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물에 가깝습니다. 장타자란 장거리 타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특출한 타자를 가리키는 말로, 홈런더비는 그 능력만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는 무대입니다.
1993년 첫 대회부터 2023년까지는 '홈런 레이스'라는 이름을 썼고, 2024년부터 KBO도 공식적으로 '홈런 더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출전 선수 선발 방식도 달라졌는데, 2024년부터는 출전 선수를 100% 팬 투표로 결정합니다. 이 방식은 팬 참여도를 높이는 데 분명히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기 선수와 실제 장타 능력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룰의 변화도 눈에 띕니다. 초기부터 2022년까지는 아웃카운트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아웃카운트 방식이란 타자에게 일정 수의 파울이나 헛스윙 등을 아웃으로 간주해 기회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한된 횟수 안에 홈런을 최대한 많이 치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해를 챙겨본 경험상, 이 방식은 선수들이 신중하게 타이밍을 고르다 보니 경기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6년 이택근이 10아웃에 홈런 단 1개로 우승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당시 중계에서도 "이게 홈런더비인지 외야 펑고 레이스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은 박재홍, 김태균, 양준혁, 이대호가 각 3회로 공동 선두입니다. 그리고 역대 최장 비거리 홈런은 1999년 박재홍과 2015년 테임즈가 기록한 150m로, 지금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출처: KBO 올스타전 공식 홈페이지).
시간제 도입으로 달라진 경기 흐름
2025년부터 홈런더비 룰이 시간제와 아웃제를 혼합한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선은 제한시간 2분 타격 후 2아웃 보너스 타임이 주어지고, 결선은 제한시간 2분 타격 후 3아웃 보너스 타임이 추가됩니다. 여기서 보너스 타임이란 제한시간이 끝난 뒤에도 추가로 주어지는 타격 기회로, 선수가 기록을 더 늘릴 수 있는 구간을 말합니다.
저는 이 방식이 상당히 현명한 절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MLB의 홈런 더비가 순수 시간제(타임 리밋 방식)로 운영된다는 점은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순수 시간제는 타자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때 허망하게 시간만 흘러가는 장면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면 아웃제만 유지하면 신중한 타격으로 흐름이 끊기는 문제가 반복됩니다. 시간제와 아웃제를 혼합하면 긴장감과 속도감을 동시에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KBO의 이번 변화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실제로 2025년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홈런더비에서 르윈 디아즈가 제한시간 2분에 3아웃 보너스 타임을 합쳐 총 8홈런을 기록하며 우승했습니다. 2위 박동원은 본경기에서만 7홈런을 쳤는데, 이 숫자들은 아웃제만 적용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확실히 많아진 수치입니다. 과거 아웃제 방식에서는 결선에서 3~5개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새 룰이 홈런 생산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지만, 팬 입장에서 체감하는 경기 템포는 분명히 빨라진 것 같습니다. KBO 올스타전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5년부터 적용된 이 혼합 방식이 관중 반응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출처: KBO 올스타전 공식 홈페이지).

파워 히터의 계보와 아직 없는 우승자들
홈런더비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파워 히터(power hitter), 즉 타고난 장타 능력으로 승부하는 타자들의 계보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파워 히터란 단순히 홈런 수가 많은 타자가 아니라, 일관된 스윙 메커니즘으로 반복적으로 강한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타자를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 차이가 홈런더비에서 꽤 도드라지게 드러납니다. 정규시즌 홈런 순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홈런더비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역대 기록을 보면 정규시즌 홈런왕과 홈런더비 우승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연속으로 강한 스윙을 유지하는 능력, 즉 스윙 내구성이 따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역대 홈런더비 우승자를 팀별로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공백이 있습니다. 주요 우승 팀과 우승 횟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 3회, 틸슨 브리또, 이승엽, 르윈 디아즈 등
- 롯데 자이언츠: 마해영, 황재균, 이대호 2회
- 한화 이글스: 김태균 3회, 윌린 로사리오, 채은성
- LG 트윈스: 심재학, 박용택, 루이스 히메네스, 오스틴 딘
- 두산 베어스: 타이론 우즈, 김동주, 김현수 2회
-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박재홍, 박정권, 제이미 로맥
이렇게 보면 KIA 타이거즈, 키움 히어로즈, KT 위즈는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홈런더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KIA는 역사도 오래됐고 최형우, 나지완 같은 장타자들이 출전한 적도 있었는데 아직까지 우승이 없다는 게 솔직히 저도 의외입니다. 앞으로 이 공백을 어느 팀 어느 선수가 먼저 채울지가 홈런더비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고 봅니다.
2022년 이대호의 마지막 홈런더비 우승은 제가 기억하는 장면 중 가장 인상적입니다. 은퇴 시즌이라는 무게가 더해지면서 서든데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분위기는 정규시즌 경기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종류였습니다. 홈런더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이 분명히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홈런더비는 KBO를 대표하는 장타자들이 타순도, 수비도, 팀 승리도 없이 오직 비거리 하나로 겨루는 자리입니다. 룰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올스타전을 챙겨보신다면 본경기 못지않게 홈런더비에도 한 번 집중해보시길 권합니다. 예상 밖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